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효빈 김씨 (문단 편집) === 야사의 기록 === 실록과는 달리 야사에 의하면, 사실은 원경왕후가 아니라 양어머니인 [[신덕왕후]] 강씨의 친정에서 부리던 여종이었다고 한다. 강씨가 입궁하면서 김씨도 같이 입궁해 궁녀가 되었는데, 미모가 뛰어나서 신덕왕후가 태조의 앞에 내놓기를 꺼렸다고 한다. 다만 태종이 왕자 시절에 김씨와 하룻밤을 보내는 데 성공한 것은 사실. 다만 원경왕후는 시어머니인 신덕왕후를 싫어해서인지 김씨에게 잘했다(?)고 한다. 즉 태종은 아내를 음해하기 위해 김씨의 출신에서부터 얼어 죽이려 했다는 사실 등을 모두 지어낸 셈이다. 이 때가 민무구, 민무질 4형제 등 외척 세력을 한참 때려잡던 때다 보니, 적절한 구실이 필요했던 것. 다만 김씨를 해하려 했던 책임을 원경왕후보다는 민씨 형제에게 전가했는데, 원경왕후가 했다고 해버리면 폐비 논란이 불거질 수도 있고 세자인 [[양녕대군]]의 입지도 위험해지기 때문이다[* 태종의 입장에서는 세자를 비롯해 아들을 넷이나 낳은 왕비를 내칠 필요가 없었다. 내친다면 새로운 외척이 등장해 그 쪽을 또 때려잡아야 하는것도 있지만, 네명의 아들들은 입지가 위태로워 지는건 당연하고 계비가 아들을 낳으면 암묵적으로 제거될 위험도 있기 때문. 한마디로 자식들에게 못할 짓이라는 거다. 사실 조선 왕조 역사상 왕자는 물론이고 왕의 자녀를 출산한 왕비들 중 폐비된 이는 일반 어염집에서도 내쳐질만한 기행들을 지속한 [[폐비 윤씨]] 단 한 명 뿐이다, 이것은 세종의 비인 [[소헌왕후]]의 친정인 심씨 집안을 숙청하면서도 정작 소헌왕후는 잘못한 게 없다며 폐출을 윤허하지 않은 점에서도 드러난다. 즉, 태종이 폐비 운운하기는 했지만 왕권을 흔들지 말라는 일종에 경고였을 뿐이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